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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음악의 예술성과 대중성: 모더니즘 vs. 포스트모더니즘 - 오희숙

오희숙(음악학자, 서울대 교수)



“과연 내 작품은 얼마나 청중에게 이해될 것인가?”

작곡가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하고 고민해 보았을 문제이다. “음악작품의 이해, 청중과의 소통, 대중적 공감대” 등의 주제는 창작에 있어서 오랜 숙고의 대상이었다. 음악의 의미와 본질을 청중과의 공감대에서 찾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와는 상관없이 그 자체의 예술성에서 찾아야 하는 것인지? 만약 그렇다면 그 예술성이란 과연 무엇인지?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 속에서 많은 작곡가들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20세기 들어 현대음악에 있어서 이 문제는 보다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소위 “현대음악” 작곡가들은 작품을 발표했을 때 청중과 비평가의 강렬한 거부 또는 냉담한 무관심을 직면하게 되는 것이 예사였다. 이러한 반응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펼치는 작곡가들이 20세기 역사의 한편을 담당했다면, 다른 한편에서는 청중의 이해와 공감대를 미학적 신념으로 펼치는 작곡가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두 방향을 20세기 작곡가들의 예에서 살펴보자. 전자의 대표적 예를 쇤베르크(A. Sch?nberg)에서 찾을 수 있다면 후자의 예는 볼프강 림(W. Rihm)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 않아도, 예술 작품은 존재한다.”(쇤베르크).

20세기 음악의 문을 연 선구적 작곡가로 평가되는 쇤베르크에 있어 음악의 의미는 어떤 목적이나 실효성과 관련된 것이 아니였다. 진정한 음악이란 -예술가의 주관에 근거하여- 오로지 음악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한다고 그는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기능이나 목적은 물론이거니와, 청중과의 교감이나 대중적 이해를 추구하는 음악가는 “사업가”일 뿐, 쇤베르크에게는 용납되지 않았다:

진정한 작곡가는 그 어떤 다른 이유에서 곡을 쓰지 않고, 그것이 자신에게 기쁨을 주기 때문에 곡을 쓴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들도록 그리고 청중을 생각하며 작곡하는 사람은 진정한 예술가라 할 수 없다.

대중성을 추구하는 음악은 피상적이며, 진정한 음악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쇤베르크는 고대 그리스의 웅변가 이야기를 인용하였다: “이 웅변가는 갑자기 환호와 박수갈채에 의해 연설이 중단되자, 놀라서 ‘내가 바보 같은 말을 했나요?’라고 외쳤다고 한다.” 자신의 작품이 발표될 때마다 끊임없이 청중의 거센 항의와 저항을 받았던 쇤베르크의 경험은 어떻게 보면 자신의 예술성에 대한 확신을 더욱 확고히 해주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 누구도 자신의 재능의 한계에 원인이 있는 것 외에는 그 어떤 한계에도 굴복해서는 안 된다. 그 어떤 바이올리니스트도 저급한 음악적 취향에 맞추기 위하여 잘못된 인토네이션으로 연주하지는 않을 것이며, 그 어떤 줄타기 광대도 단지 재미를 위해서 또는 인기를 얻기 위해서 잘못된 방향으로 걷지는 않을 것이다. ... 최고의 영역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펼치고자 하는 그 어떤 미술가, 시인, 철학자, 음악가도 “모두를 위한 예술”과 유사한 슬로건에 부응하기 위해서, 통속성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술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모든 이를 위한 것이 아니다. 만약 예술이 모든 이를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예술이 아니다(?신음악과 낡은 음악?, SG 34쪽).

<모든 이를 위한 예술은 예술이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쇤베르크는 말한다: “왜냐하면 단지 예술을 위한 예술(l'art pour l'art)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예술의 의지에 의한 예술”이 있을 따름이다.

“작품의 이해가능성은 예술가에 있어서 실존의 문제이다.”(림)

20세기 후반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며 최근 현대음악계의 대표적 인물로 자리잡은 볼프강 림은 쇤베르크와는 아주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 “청중의 이해가 중요한 문제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림은 위와 같이 명확하게 대답한다. 대중적 이해가능성은 작곡가에게 본질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림은 “한 예술가는 <작품이 이해되었나요?>라고 묻기 보다는 <내가 이해되었나요?>라고 묻게 될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물론 이 말이 예술의 창작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림은 음악의 본질을 언어적 성격, 즉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하는 특성에서 찾았기 때문에, 작품과 청중과의 상호소통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즉 전통적인 음악적 의사소통의 방식에 의거하여 인간(작곡가)이 인간(청중)에게 음악이라는 무개념적인 언어를 매개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림은 청중의 이해를 얻지 못하고, 점점 더 고립되어가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경직된 아방가르드적 음악계를 비판하였다. <이해성은 현대음악에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라는 아방가르드적 입장에 대해, 이들은 “가상적인 불이해성”을 현대적 예술의 중요한 증거로서 보고, 단순히 이해되는 예술을 비방한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에는 “고독한 예술가”라는 낭만주의적 예술가상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본다.

[그러한 아방가르드적 작곡가는] 왜 고독한가? 이해되지 못하니까! 왜 이해되지 못할까? 그는 결코 이해될 수 없으니까! 왜 이해될 수 없는가? 그는 너무 먼 미래에서 이야기 하니까! 왜 그렇게 그는 [먼 미래에서] 이야기 하는가? 그에게는 그의 상상력의 축척된 에너지가 그를 그곳으로 날려버렸기 때문에! [그렇다면] 왜 그는 거기서 돌아오지 않는가? 그는 돌아 올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돌아올 수 있는] 다리를 부셔버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상의 대화를 통해 림은 이해받지 못하는 작품을 쓰는 작곡가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되돌아올 수 있는 다리를 없애버리고, 자신의 음악을 이해하는 소수의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 외로운 작곡가! 이러한 작곡가들 때문에 청중은 작곡가를 지적으로 따라가기 위해 진땀을 흘리고, 소수의 청중만이 그것에 성공하게 되면서 그 청중도 고독한 사람이 된다고 설명한다.

모더니즘 vs 포스트모더니즘

쇤베르크와 림의 상반된 입장은 흥미롭다. 이 두 작곡가가 각각 자신의 확고한 예술세계를 구축하고 있음을 상기할 때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이들의 개인적 입장은 역사적 경향을 반영한다. 20세기 초, 전통에서 벗어나 독창성을 추구하며 예술의 형이상학적 의미를 추구했던 모더니즘 경향은 현대 예술의 문을 연 원동력이었다. 진정한 예술이란 단순히 듣기 좋은 소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진실을 추구하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어야 한다는 모더니즘적 미학관은 쇤베르크의 사고에 그대로 대변된다. 20세기 후반 들어 예술이 더 이상 독창성의 노예이어서는 안 된다고 호소하면서, 다양성을 허용하고, 청중들이 향유할 수 있는 그런 예술의 의미를 뒷받침 해준 것은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이었다. 음악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말하고자 한다고 주장하며, 상실된 음악의 언어성을 다시 살리고자 했던 림은 포스트모더니즘적 경향을 드러낸다. 미학적 패러다임의 변화는 작곡가들의 사고를 변화시켰고, 이는 다시 음악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이제처음에제기된문제에다시되돌아오게된다.과연어떤방향에서음악의창작이시도되어야할것인가?이에대한명확한해답은여전히찾기어렵다.그러나확실한것은,그어떤방향도열려있다는사실이다.쇤베르크와림의예에서도느껴지듯이,음악이라는예술은무한한자유의가능성을열어놓고있기때문이다.그래서우리는지금 21세기의 “멋진”음악을가슴설레이며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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