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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 구바이둘리나의 Opus summum, <요한수난곡> - 서정은

서정은(음악학자, 서울대학교 교수)

예술가들이 일생을 통해 탐색하고자 하는 가치들, 예술작품 안에서 구현될 수 있는 가치들 가운데 인간의 정신을 고양하고 내면의 깊이를 더해주는 것은 예술가와 예술작품을 보다 위대하게 만드는 중요한 덕목일 것이다.

우리의 생각과 정신의 지평을 넓혀주는 철학과 종교, 인문과 예술의 세계는 현재 우리 사회의 많은 분야에서 실용의 이름아래 또는 경제성장과 이익증대라는 목표에 가려 잃어져가는 가치들을 지키고 담아내야 할 마지막 영역으로 보인다. 나아가 피상성과 가벼움의 시대, 찰나의 흡족을 좇는 경박한 시대를 극복하고 깊은 정신적 세계를 추구하는 수단으로서 음악은 매우 뛰어난 도구 중 하나다.

1931년 구소련 지역의 치스토폴에서 출생해 50여 년간을 정치사회적 제한 속에서 살았던 소피아 구바이둘리나는 자신만의 강력하고 투철하며 치열한 정신세계를 견지해온 작곡가다. 쇼스타코비치, 슈니트케와 함께 구소련 출신의 대표적 작곡가로 꼽히는 그녀는 20대였던 모스크바음악원 시절 정치적 압력에 직면하기 시작한다. 소련당국에서 예술가들에게 미학적 기치로 내건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부합하지 않고 서구의 아방가르드를 지향했다는 이유로 그녀의 음악은 종종 검열과 공연금지의 대상이 된다. 1953년 스탈린 사망 후 흐루시초프가 집권했던 짧은 정치적 해동기엔 소련 내에서 연주되기도 했으나, 1964년 브레즈네프의 신 스탈린시대가 열리면서 다시금 작품연주가 어렵게 된다. 구바이둘리나는 이러한 상황에 순응하지 않고 당시의 많은 구소련작곡가들처럼 영화음악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꾸준히 자신의 음악세계를 발전시켜 나간다. 주로 자국이 아닌 폴란드나 크로아티아의 현대음악 페스티벌에서의 작품연주를 통해 명성을 얻어가던 구바이둘리나의 인생은 마침내 1980년대 고르바초프의 개혁적 정치국면을 통해 커다란 전환을 맞게 된다. 서구로의 여행이 처음 허용된 1984년부터 국제적 인지도를 쌓기 시작한 후 점차 유럽전역, 미국, 캐나다, 호주, 일본 등지로의 연주여행을 통해 동유럽을 대표하는 현대작곡가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되며, 1992년 이후로는 독일 함부르크 근교에 거주하며 동서양의 무대를 아우르는 풍성한 작품활동을 벌이고 있다.

구바이둘리나의 음악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예컨대 색다른 악기편성을 통해 독특한 음향을 창출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1975년 이후 소련의 동료 작곡가들과 즉흥연주그룹을 창단하여 러시아, 코카시아, 아시아의 민속악기들을 사용한 연주활동을 했던 이력이 중요한 영향으로 작용한다. 이때의 경험은 서유럽의 클래식 악기전통을 넘어서서 타문화권의 것을 포함하는 자유로운 음향세계로 그녀의 청각적 상상력을 확장시킨다. 또 다른 특징은 음악적 상징, 즉 음악 밖에 있는 개념들을 음악으로 치환하는데 숫자나 도형, 몸짓 등의 상징을 도입하는 것이다. 이는 작품의 정서적 분위기뿐 아니라 형식 구성의 측면을 통해서도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이들보다 더 중요한 구바이둘리나의 특징은 음악의 신비적 속성에 대한 깊은 신념 위에 대부분의 작품에서 종교적 성격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는 그녀의 음악이 거의 항상 표제적 성격을 띠는 사실과 통하는데, 즉 작품구성적인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신바로크 또는 신고전적 특징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내적 동인은 음악외적(대부분 종교적)인 개념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점이다. 러시아정교의 독실한 신앙을 토대로 최후의 심판, 계시록, 십자가, 부활, 변용과 같은 개념을 작품에 도입하는 구바이둘리나에게 있어 ‘종교성’은 앞서 말한 ‘상징’이란 방식과 결합하여 그녀의 많은 대표작들을 이해하는 중심축이 된다.

‘삶 안에서 단절되었던 것들의 회복’(restoring the legato of life), 즉 ‘다시 연결됨’(re-ligio)을 종교와 음악이 갖는 공통의 목표라고 말하는 그녀의 작품세계는 자신의 내면에서의 깊은 성찰과 투쟁으로부터 비롯되기에, 외부세계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매우 독립적이고 고집스런 정신세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독일의 어느 비평가가 지적하듯이 1950년대 스탈린시대로부터 80년대 개방의 시대, 또 구소련으로부터 독일로의 환경적인 큰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품세계는 상당부분 통일성을 띤다. 이것은 작곡가의 분명한 강점이기도 하고, 동시에 한 가지 성격 안에 고립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서두에 언급했듯, 인간의 삶에서 보다 근원적인 변화와 개선을 빚어낼 수 있는 수단을 음악과 예술 안에서 찾아가려는 시도, 이러한 가치추구의 삶을 보여주었던 예술가들의 역사가 지금까지의 예술사, 음악사를 형성해온 하나의 중요한 축이라 할 때, 구바이둘리나는 예술가의 이러한 역할을 자신의 일생을 통해 보여주는 현대의 대표적 인물임에 틀림없다. 피상적 화려함을 넘어서는 그녀 음악의 깊은 정신적 울림이 바로 안네소피 무터, 로스트로포비치, 기돈 크레머 등 연주가들의 사랑을 지속적으로 받는 원동력이 아닐까. 내성(內省)이 필요한 이 시대에 구바이둘리나의 음악을 통해 성찰과 관조의 시간을 갖는 기회가 제공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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