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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와 스타일(양식)의 문제 - 김춘미

김 춘 미 (음악학)

한국예술종합학교 협동과정부 교수

 <오늘의 작곡가, 오늘의 작품> 발행인



한 작곡가가 “자기만의 스타일(양식)을 가지고 있다” 라는 말은 “그는 작곡가이다” 라는 언급을 위한 주요 준거가 된다. 한 작가가 누구나 감지할 수 있을만한 스타일을 가진다는 것은 많은 시간의 생각과 작업의 노동량이 이를 뒷받침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양식이라는 말은 원래 라틴어의 스틸루스(stilus)에서 온 말이다.  라틴어의 스틸루스는 고대 로마에서 납판에 글씨를 쓸 때 사용한 뼈나 금속으로 만든 뾰족한 필기구이다.  이러한 필기구의 뜻으로부터 전이된 의미가 문장쓰는 법, 또는 문체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 후 양식의 개념은 점점 확대되었고, 미술의 시대별 변천에 문체론을 응용하여 미술사학의 시대별 양식개념이 생겼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양식개념은 더 확대되어 왔는데, 전체적으로 양식의 본질은 정신적 유형의 형태화에 있다.  그래서 그 정신유형의 전 계층에 따른 양식개념이 존재하고, 그 외 매개, 시간, 공간적 조건에 따른 양식개념도 무수히 존재한다.


예술가의 개인별 제 양식, 시대 양식, 민족 양식, 지방 양식, 청년 양식, 장년 양식, 세대 양식, 계급적 양식(부르조아 양식), 집단적인 유파 양식 (야수파, 비인악파), 정물화 양식, 서사시 양식, 오페라 양식. 유화 양식, 숭고 양식, 부조 양식, 환조 양식, 고전적 양식, 상징적 양식, 좋은 양식, 나쁜 양식, 단순 양식, 복잡양식, 도시 양식, 한국적 양식, 독일적 양식, 20세기 양식, 건축 양식, 음악 양식, 미술 양식, 무용 양식, 감정적 양식, 감정과다 양식, 자연주의 양식, 사실주의 양식, 낭만주의 양식, 민속 양식, 산문 양식, 혼합양식, 대리석 양식, 목조 양식, 이 중섭 양식, 마티스 양식, 베에토벤 양식, 제3세대 양식, 서태지 양식, 신중현 양식, 화려한 양식, 시각적 양식, 공간적 양식, 시청각적 양식, 이지적 양식, 역사적 양식, 초월적 양식, 물리적 양식, 능동적 양식, 수동적 양식, 교회 양식, 세속 양식, 궁정 양식, 극장 양식, 주관적 양식, 객관적 양식, 화성적 양식, 대위법적 양식, 바로크 양식, 판화 양식, 시적 양식, 개별적 양식, 통합적 양식, 비극적 양식, 희극적 양식, 마당극 양식, 노래 양식, 관습적 양식, 구조적 양식, 선율적 양식, 외적 양식, 내적 양식, 모방 양식, 반복적 양식, 분절적 양식, 자기 목적적 양식, 무목적적 양식, 직관적 양식, 경험적 양식, 행동 양식, 일원적 양식, 다원적 양식, 서양적 양식, 동양적 양식, 보편적 양식, 서정적 양식, 관념적 양식, 감각적 양식, 효율적 양식, 비효율적 양식, 평면적 양식, 입체적 양식, 언어 양식, 구성 양식, 재현적 양식, 표현적 양식, 유동적 양식, 즉흥 양식, 불교적 양식, 기독교적 양식,  모더니즘 양식, 포스트 모더니즘 양식, 전통적 양식, 정통 양식, 부수적 양식, 문학적 양식, 지배적 양식, 이념적 양식, 문화 양식, 생활 양식 등등.  양식의 개념 안에는 방식, 유형, 패턴, 양태, 형태, 규칙, ...법, 가치적 의미, 형식 등의 다양한 의미가 시간-공간, 내적-외적, 개체-집단 등의 조건을 토대로 폭넓게 자리하고 있다.


말한 바와 같이 양식의 본질은 인간의 다양한 정신적 유형의 형태화에 있다, 일단 좋은 양식,  나쁜 양식과 같이 가치적 의미를 수반하는 것을 떠나서 서술적 차원의 형태화, 특히 예술과 관련된 형태화에는 어떤 공통적 범주화가 가능할 것 같다. 이러한 범주에 대한 이해와 실천은 많은 작곡가들이 일생 추구해 온 바다. 그 공통적 범주 중에 우선 첫째로는 양식의 고유성 문제가 대두된다. 양식 개념이 개입되는 시대, 예술가 개인, 지역, 장르 등의 특성은 그 개인, 공간, 시간, 집단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과 방식을 획득하고 있다. 그럴 때만이 양식이라는 개념이 성립한다.  그렇기 때문에 양식은 또한 일회성을 갖는다. 양식은 그 고유한 성격 때문에 다시 반복되지 않는 특성을 가지게 되며, 어떤 예술가의 양식이 다른 예술가의 양식으로 똑같이 반복될 수 없고, 어떤 지방과 시대의 양식이 다시 반복될 수도 없는 것이다.  다만 어떤 양식 자체의 반복은 아니지만 개개 양식이 가지고 있는 원리와 가장 대표되는 특성 등의 일부가 재구성될 수 있을 뿐이다.

둘째로 양식이 양식이기 위해서는 그 내부를 묶는 공통성이 있어야 한다.  양식은 고유하고 일회적이지만 내적으로는 공통성을 가져야 고유함을 또한 지닐 수 있다. 그러니까 베에토벤 양식이 베에토벤 양식이 되기 위해서는 베에토벤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의 모든 작품에 공통적으로 내포되어 있는 공통성이 있어야 한다. 이 같은 범주는 마치 저 사람은 한국인이다 하는 것을 말할 때 거치는 일련의 과정과 같은 특성을 지닌다.  그리고 양식이 가지는 공통성이란 예술의 경우 작가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작품 상에 나타나는 것이 좀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다음 셋째로 들 수 있는 양식의 범주는 전체성이다. 이것은 양식의 궁극적인 목적과도 통하는 것이다. 즉 양식이란 어떤 작품이 가지고 있는 개개 요소 그 자체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술과 관련된 작곡들의 양식을 분석하고 중요한 관점으로 바라보려고 하는 이유는 요소 개개의 형태화된 특성을 모아 그 전체를 파악하고, 그것을 다시 범주화해 가면서 그 이면의 인간을 파악하려는 데 있다.  예술적 작업에서 대상을 파악하여 일어나는 인간 정신작용의 외화는 만드는 기술을 통해 어떤 매개의 형태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문학, 회화, 조각, 음악, 무용 등 다양한 양식이 그래서 파생한다. 그런데 작품은 다시 작품의 한계로 인해 내면적 전체를 드러내기 어렵다. 그러나 될 수 있는 한 작가는 그것을 드러내기 위해 작품의 구석구석을 만진다. 따라서 양식은 작품의 개개 요소를 따로 떼서 생각할 수 없다.  그 요소들의 특성들이 하나로 전체화되었을 때, 그 통로를 통하여 아직 확연히 다 드러나지 않는 내재적 의미들을 찾아 나설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수업과정에 있는 작곡가의 주요 탐구 대상이 되는 양식 연구의 목적은 우선 양식파악에 있어서의 전체성을 획득하는 것이요, 그 다음은 다시 본질적 차원의 정신적 체계를 스스로의 고유한 방식으로 구축해나가는 것이다.  


모든 예술 작품의 근본 구조는 그 존재 방식상 ‘실재적 전경’과 ‘비실재적 후경’으로 이루어졌다고 규정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 모든 ‘객관화된 정신’의 특성을 가진 실재에 다 공통적으로 통하는 말이다.  그러나 예술은 어느 것보다 정신적 후경이 지니고 있는 전체적 모습을 전경의 세부에 드러내려고 하는 총체적인 노력을 한다.  그래서 전경에서 가장 깊이 있는 정신으로까지 다가가는 데는 여러 층의 현상과 의미를 파악하는 과정을 필요로 하고, 작가가 다시 자기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을 전경으로 끌어내는 데도 자신의 어휘가 갖는 의미의 필연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만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표현 대상과 표현 욕구를 유발시키는 표현의 자기동기 유지 못지않게 음을 다루는 기술의 숙련 역시 중요해지는 것이다.


예술이란 능동적으로 살아있는 인간이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나누기 위해 만들기 시작한 창조적 기술의 진열장인 만큼 스튜디오 2021도 그런 사례들의 전시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장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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