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천재의 산물인가? : 음악적 “천재”에 대한 미학적 단상 - 오희숙

오희숙 (음악학자, 서울대 작곡과 교수)

“아름다운 예술은 천재의 산물이다”라는 칸트(I. Kant)의 말처럼 멋지고 감동적인 예술을 접할 우리는 한번쯤 “천재”를 생각하게 된다. 특히 음악에서는 수많은 천재들과 만나게 되는데, 모차르트는 우리가 가장 흔하게 접할 있는 음악적 천재의 예가 것이다: “모차르트의 존재는 일종의 필연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피할 없다. ... 그의 천재성을 인정하는 데에는 어떤 절대적인 것이 있다.” (E. Rohmer) 그래서 음악가라면 한번쯤 모차르트 또는 베토벤 같은 천재 작곡가 또는 파가니니와 리스트 같은 천재 연주자를 동경하게 된다.


그렇지만 천재에 대한 비판적 견해 역시 만만치 않다. 일찍이 플로베르(G. Flaubert)는 천재에 “감동하는 것은 쓸모없다: 그것은 일종의 노이로제이다.”라고 천재론에 의구심을 표명했으며, 20세기 들어 가다머(H. G. Gadamer), 아도르노(Th. W. Adorno), 리요타르(J. F. Lyotard) 등의 철학자들은 -각각 다른 이유에서이지만- 천재론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철학자들의 비판에 기대지 않더라도, 사실 실증주의적․합리주의적 사고가 강조된 현대 사회에서 “천재론”은 낡은 구식의 담론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출간된 『천재는 죽었다』(심상룡, 2003)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은 이런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음악을 하는 우리에게 “천재”는 쉽게 떨쳐버릴 없는 무엇인 같다. 이는 그동안 축적된 음악사의 면면에 내재된 천재적 음악가들의 성과를 단순히 무시할 없기 때문이며, 머리를 쥐어짜며 고민하는 음악의 창작과정에서도 “천재의 존재”, “천재성” 등의 문제를 완전히 떨쳐버리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음악에서 천재가 의미하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 천재란 타고난 것으로 교육과 노력으로 도달할 없고, 그래서 평범한 음악가들에게 좌절을 안겨주는 존재일까? 아니면 천재란 과장된 신화로서 한낱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일까? 음악에서의 천재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궁금증들이 계속 이어지지만, 여기서는 음악에서의 천재에 대한 다양한 입장을 <천재미학>이라는 개념으로 포괄하면서, 천재미학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짚어보면서 천재의 의미를 조명해 보고자 한다.


천재미학의 의미

천재를 긍정적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보는지에 관계없이, 천재 미학이 확립되면서 음악 전반에는 일련의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음을 부인할 없다. 우선 예술에서 천재를 논하는 근본 배경에는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의 사고관의 변화가 내재해 있는데, 천재적인 예술가의 존재를 인정하게 됨에 따라 신의 산물인 자연을 모방하는 예술가보다는, 예술가 개인이라는 인간에 대한 관심이 높이지게 된것이다. 말하자면 “천재” 음악가를 인정하고 존경하는 분위기가 형성됨에 따라 자율적이고 독자적인 표현능력을 가진 새로운 예술가상이 탄생하게 되었다. 음악의 경우 사람들은 음악작품을 통해 종교적 신앙심을 드러내기보다 이제는 작곡가와 연주자라는 개인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천재음악가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표현에 경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천재미학은 <독창성>이라는 새로운 미적 가치를 제시하여 영향력을 미쳤다. 자연모방에서 벗어나 주관적인 독자성을 드러내는 천재는 “새로운 것”,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던 것”을 드러내는 사람으로 추앙되었고, 이를 통해 음악의 가치를 독창성에서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작품의 미적 가치는 “그 작품이 얼마나 독창적인가”에 의해 가늠하게 되었고, 이러한 독창미학은 18세기 중반이후 20세기까지의 음악사에서 작품을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로 자리 잡았다.


다른 한편 천재미학의 탄생은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의 상승과도 관련된다. 천재라는 개인의 역량을 인정하면서, 교회나 궁정에 종속된 작곡가에서 벗어난 자유 예술가의 탄생이 촉발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음악가들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사회적 자유인으로서 활동하게 되었고, 나아가 일종의 사회적 파워까지 소유하게 된다. 모차르트에서 이러한 변화의 징후가 발견된다면, 최초의 자유 음악가 상은 베토벤에서 확립되었다고 있다. 그래서 괴테와 함께 산책하던 베토벤은 왕족과 마주치면서 길옆으로 비켜서지 않은 곧장 걸어갈 있었고, 자신을 후원하던 귀족에게 당당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동시대 작곡가였던 할름(A. Halm)에게 규칙을 어긴점을 지적하자, 할름이 베토벤에게 “당신도 그러지 않았느냐”고 질문했을 때, “나는 그래도 되지만, 너는 아니야”(P. Kivy)라고 당당하게 말할 있었던 것은 미적 자신감과 사회적 인정이 뒷받침된 천재에서 가능했다고 있다.


특히 낭만주의가 지배적이었던 19세기는 천재 음악가의 전성시대였다. 개인의 주관성을 강조하던 낭만주의 시대에 음악가들은 영감을 받은 “천재”로서 문화적 영웅으로 추앙받았고, 이에 따라 기괴한 행동이나 비윤리적 행동까지 용납되기도 하였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기이한 소문에도 파가니니는 여전히 추앙받는 연주자였고, 온갖 염문을 뿌렸던 리스트도 인기가 줄어들지 않았던 것이다. 음악을 통해 말로 형용할 없는 것을 계시하는 천재는 일반 민중과 분리된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천재미학을 통해서 음악의 의미가 상승된 점도 빼놓을 없다. 천재미학에서는 “하나의 전체 세계”를 창조해 내는 천재의 “심미적 주관성”이 강조되었는데, 이를 통해 예술의 자율성이 확고해졌다. 어떤 기능이나 목적에서 해방된 음악 자체로서의 절대음악의 존재가 정당화되었고, 단계 나아가 천재의 산물인 음악작품은 세계의 본질을 보여주는 형이상학적 의미를 소유하게 것이다.


천재미학의 허점

그렇지만 이러한 천재미학이 긍정적 측면만을 가지고 있을까? 여기에는 많은 의구심이 뒤따른다. 시점에서 우리는 천재미학의 긍정적 기여 뒤에 숨겨진 이면을 살펴볼 필요를 느끼게 되는데,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점은 음악가들의 예술적 정체성 문제이다. 천재미학이 독창성의 발현을 통해 음악가 개인의 예술성을 표출하게 점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반대로 다시금 정체성을 잃게 하는 측면도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는 천재에 꼬리표처럼 붙어 다니는 “영감”과 관련이 있다. 천재의 예술창작은 “타고난 재능”, “무의식적 영감”에 의한 것으로 이해되는데, 이를 통해서 예술적 자의식이 흔들리고 있는 측면이 발견된다. “시인은 자기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신의 말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플라톤의 영감론에서 출발한 영감미학은 여러 천재 작곡가에게 적용되는데, 영감을 강조한 작곡가들에게 우리는 예술적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자 않을 없다. “한 작품의 창작과 탄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신비하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낯선 영감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야 하고, 이것이 나중에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할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말러(G. Mahler), “모든 위대한 작곡가의 창작은 바로 영감에서 출발하고, 그것이 중심을 이루며 삶의 법칙이며,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다”라고 주장한 피츠너(H. Pfitzner)의 고백을 들으면 우리는 <작곡가의 자율의지>, <예술적 자의식>은 어디 있는지를 묻고 싶어진다. 나아가 종교적 측면과 연결된 영감미학을 보여주는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끝없는 영감을 소유한 천재 작곡가로 평가되는 모차르트에 대해 링엔바흐(R. Ringenbach)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하나님은 음악이시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예술께서 우리에게 열어 보이신 신비에 대한 아주 놀라운 해석입니다... 모차르트가 하나님께 다가간 것인가요? 하나님이 모차르트에게로 다가오신 것은 아닐까요?” 또한 브람스는 “모든 진정한 영감은 신에게서부터 온다. 그리고 신은 우리에게 신적인 것의 불꽃을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보자면 모차르트와 브람스는 독창적인 천재라기보다는 “신의 단순한 매개자”가 아닐까?


천재미학은 음악가의 개별성의 강조에서 출발했지만 종국에서는 개별성을 상실하는 모습을 띤다고 있다. 영감의 강조는 작곡가를 주체적인 정체성의 소유자라기보다는 무의식적 영감의 단순한 “수용자” 또는 종교적 계시의 “매개자”로 역할과 의미를 축소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천재미학은 “수동적” 예술가상을 창출하였다고 있다.


나아가 개인성을 강조한 천재 미학은 예술을 둘러싼 환경인 사회와 역사를 간과하는 경향을 보인다. 천재미학을 통해 아름다운 걸작은 단순히 개인적 천재성의 차원으로 돌려져, 예술의 사회적 의미를 간과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도르노는 천재 개념이 “허구”라고 말한다. 천재미학이 예술작품을 무의식적 차원, 개인적 차원으로 돌려 예술가를 억압하고 있으며, 예술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역사적 맥락에서 탄생한다는 점을 간과한다는 아도르노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 있어 보인다. 현실과 사회는 음악과 불과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천재가 아닌 음악가에게

천재미학의 득과 실을 따져보니, 천재가 단순히 동경의 대상은 아닌 같다. 천재의 손길에서 아름다운 예술이 창출되지만, 다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천재 숭배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천재가 아니라고 낙담할 필요는 없을 같다. 나아가 우리 자신이 “천부적으로 타고난” 천재가 아닌 것에 낙담할 필요도 없을 이다. 음악적 천재성을 연구한 많은 음악학자와 미학자들은 타고난 능력 외에도 다양한 노력을 천재의 요건으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식적인 노력이 천재에게는 중요하다는 것인데, 특히 근면함과 부지런함은 중요한 척도로 보인다. 철학자 키비(P. Kivy)는 부지런한 작곡가 J.S.바흐와 하이든에게 “워커홀릭(일중독자)적 천재”라는 칭호를 선사하고 있으며, 아인슈타인(Alfred Einstein)은 위대한 작곡가들의 “구조적인 지력”, “대단한 집중능력”, 그리고 아마 가장 중요한 요소라 있는 “신들린 근면성”을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례를 종합해 우리는 천재라는 존재를 훨씬 “쿨”하게 대할 있을 같다. 천재의 존재에 감사하지만, 천재가 모든 것을 해결할 있는 최상의 심급은 아니며, 타고난 천재도 열심히 노력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천재성을 넘어서는 가치가 다양한 가치가 존재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인슈타인은 예술의 최고의 가치로 <위대성>을 들고 있는데, 어쩌면 그것이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며칠 밤을 새우며 고민하는 많은 음악인들이 동경하는 지점이 아닐까? “예술가의 위대성은 내면적 세계의 구축이다, 그리고 내면적 세계를 외부의 세계로 전달하는 능력이다.”(A. Einstein)


오늘도 우리의 평범한 음악인들은 번뜩이는 영감이  있는 천재가 아니라도 자신의 내면세계를 구축하기 위해서 땀방울을 흘리며 작품의 창작과 연주에 매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더 멋진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평범한 음악인들이여 힘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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