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정 은 (음악학자, 서울대학교 교수 )
예술가의 ‘창작행위’, 그리고 이로부터 발생하는 ‘작품’을 결정짓는 요소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현재 우리가 일컫는 ‘서양음악사’는 단순하게 말해 ‘작곡가와 작품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조금 구체적으로 말하면 ‘서유럽의’ 고급예술—즉 대중음악이나 민속음악을 제외한 이른바 ‘클래식’—범주에 속하는 작곡가와 작품의 역사라 할 것이다. 중세에 구전되던 종교음악을 중심으로 이어져 오던 음악의 역사는, 중세 후기에 이르러 폴리포니의 발전과 함께 ‘작곡가’라는 직업군의 발생으로 이어지게 되고(이러한 흐름이 기보의 발전과 맞물려있음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로부터 본격적으로 서양음악이 발달하기 시작하여 르네상스에 접어들면 인문주의 정신에 발맞춰 ‘작곡가’ 개인과 그가 남기는 ‘작품’의 개념이 독립적으로 서게 된다. 그 이후 현대까지의 서양음악사를 이루는 근본적인 구조적 틀은 거의 변함없이 이어져왔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다만 시대마다 변화하는 예술사조와 사회구조 안에서 다양한 양식과 기능의 음악작품들이 끊임없이 창작되어 온 것이다.
이러한 서구에 비해 비서구권의 음악문화에서는 작곡가나 작품의 개념이 훨씬 뒤늦게 발달했다. 시대순으로 나열할 때 프랑스-이탈리아-독일(및 오스트리아) 3개국으로 대표되는 서양음악사의 주도권은 19세기말부터 서서히 다른 나라들과 공유되기 시작하고, 20세기 중후반에 이르면 사실상 ‘서양’음악사라는 개념이 모호해진다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이제 어떤 지역문화에 고유하게 귀속된 음악양식이나 사조를 말하기 어려워졌다(최소한, 위에서 말한 ‘클래식’ 범주에 있어서는 그렇다).
그런데 이것은 거꾸로 말하면, 서유럽의 불과 몇 나라의 문화를 이루던 음악양식이 전 세계의 다른 지역에까지 놀라운 파급력으로 전파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긴 설명이 없이도 우리나라의 클래식음악 상황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된다. (서유럽 음악의 이러한 특수성 또는 영향력이 어디에 기인한 것인가 하는 점들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될 터인데, 이번 스튜디오2021 시즌의 초점이 그것에 있지 않기에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스튜디오2021에서 소개될 작곡가들—대부분 서유럽 외의 작곡가들이며, 그 가운데서도 주로 러시아와 동유럽 중심—을 이해하는 데는 위의 사실들이 바탕이 될 것이다.)
앞서 언급한바 서유럽 외의 지역에서는 작곡가와 작품의 개념이 뒤늦게 발달했다는 사실은, 고유의 전통을 가진 민속음악이 그 나라 음악문화의 주류를 이루었다는 것과 통한다. 이는 러시아 및 동유럽의 경우에도 해당한다.
세계의 음악사에서 러시아와 동유럽이 차지하는 위치를 간략히 보면, 러시아정교회(Russian Orthodox Church)의 종교음악과 민속음악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자국 내의 음악문화가 18세기에 표트르1세와 엘리자베스 여제, 캐서린 여제 등 서유럽음악에 관심을 가진 황제들을 통해 서양 클래식음악을 유입하게 되고, 19세기에 이르자 후대에 그 영향력이 자국 내로 한정되지 않을 몇몇 작곡가들을 배출하게 된다.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글린카(Mikhail Glinka, 1804–1857), 5인조(‘The Five’, 또는 ‘The Mighty Handful’)로 불리는 발라키예프(Mily Balakirev, 1837–1910), 보로딘(Alexander Borodin, 1833–1887), 큐이(César Cui, 1835–1918), 무소르그스키(Modest Mussorgsky, 1839–1881), 림스키 코르사코프(Nikolai Rimsky-Korsakov, 1844–1908), 그리고 아마도 이 가운데 가장 대중적일 차이코프스키(Pyotr Tchaikovsky, 1840–1893) 등이 그들이다.
같은 19세기에 폴란드, 헝가리 등에서 쇼팽(1810-1849)과 리스트(1811-1886) 등 몇몇 탁월한 작곡가들이 나왔으나 동유럽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후 본격적인 작품활동과 연주활동은 주로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지에서 하면서 일생을 보냈기 때문에 이들의 음악을 폴란드의 음악 또는 헝가리의 음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윽고 20세기에 이르면, 위에서 언급했듯 지역간 음악문화의 교류와 공유가 활발해지면서 러시아와 동유럽 출신 중에서도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상당수의 작곡가들, 그리고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세계적으로 뛰어난 연주가들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19세기와 20세기의 전환기에 살았던 스크리아빈(Alexander Scriabin, 1872–1915)과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 1873–1943), 프로코피에프(Sergei Prokofiev, 1891–1953)도 기억해야 할 인물들이며(특히 스크리아빈의 중후기작품은 동시대 제2비인악파의 음악 못지않게 진보적이다), 현대음악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1882–1971), 그보다 많이 알려지진 않았으나 역시 현대음악의 선구자 중 하나인 모솔로프(Alexander Mosolov, 1900–1973)등이 20세기 초∙중기까지의 음악사를 장식했던 러시아 출신의 주요작곡가들이다.
스튜디오2021 이번 시즌에 소개될 쇼스타코비치(Dmitri Shostakovich, 1906–1975), 구바이둘리나(Sofiya Gubaidulina, 1931-), 셰드린(Rodion Shchedrin, 1932-), 슈니트케(Alfred Schnittke, 1934-98), 펜데레츠키(Krzysztof Penderecki, 1933- ), 패르트(Arvo Pärt, 1935- )는 위에 나열된 선배작곡가들의 뒤를 잇는 이들로서, 크게 다음의 두 가지 축을 통해 이들의 음악을 이해해 보기를 제안한다.
하나는, 음악뿐 아니라 모든 문화현상이 그러하듯이, 창작자가 속해 있는 사회와 그가 만든 작품들 간의 관계라는 축이다. 아시아와 서유럽 사이에 위치한 러시아 및 동구권이라는 특수한 지역적∙문화적 배경, 그리고 20세기의 대부분을(1917-1990년) 소비에트 공산정권의 장악 아래 있으면서 음악을 배우고 작곡을 했던 이 작곡가들은 공통적인 사회정치적 환경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정치∙사회적 구조뿐 아니라 문화예술의 영역에도 강력하게 관여했던 소비에트 정권은 ‘사회주의 리얼리즘’(Socialist realism)이라는 일종의 미학적 기치를 내걸고 예술가들을 간섭했다. 노동자계급과 그들의 투쟁을 미화시켜 공산주의 정신을 고취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이 예술강령은 주로 문학, 회화, 조각, 영화 등 직접적인 메시지 전달이 가능한 분야에 적용되었으나, 추상성이 강한 음악분야도 예외는 아니었다. 작곡가들은 프롤레타리아의 삶과 투쟁을 표현하는 활기차고 선동적인 음악을 작곡해야 했고, 이것은 언어텍스트를 가진 성악작품 뿐 아니라 순수기악작품에서도 구현되어야 하는 목표였다.
모순적이게도 소비에트 정권의 마음에 들었던 음악양식은 서유럽에서 19세기까지 발전해온 조성음악이었고, 반면 이 정권과 동시대에 서유럽의 새로운 음악경향을 이끌어가던 무조성 현대음악은 이른바 ‘형식주의’라는 이유로 비판되었다. 1936년 스탈린의 탄압을 받은 유명한 일화 외에도 쇼스타코비치는 일생 소련에 거주하면서 자신의 예술적 욕구와 생존을 위한 조건 사이에서 고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곡가들의 생애에 대한 개별적인 정보는 본 뉴스레터에 수록된 음악학자 이혜진과 신상호의 프로그램 노트를 참조하기 바란다.)
1906년생 쇼스타코비치 뿐 아니라 그보다 먼저 태어나 이미 작곡가로 성장한 후 동일한 소련사회를 경험했던 선배 작곡가들, 그리고 이번 스튜디오2021 무대에서 소개될 1930년대 러시아와 동유럽 출생의 다섯 작곡가들은—창작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작업임에도 불구하고—이처럼 정권에 의한 일정한 경향성, 그리고 특정 경향에 대한 배타성을 강요받으며 작품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러시아가 아닌 ‘소련’시대에 속했던 작곡가들 중 많은 이들은 서유럽이나 미국으로 망명 아닌 망명을 했고, 어떤 이들은 외국에 체류하다가 경제적 이유로 다시 영구귀국을 하여 창작에 속박을 받기도 했으며, 어떤 이들은 평생 소련 또는 그 위성국에서 살면서 자신의 작품노선을 체제에 순응시켜 가거나, 허용되는 한계선까지 자신의 음악세계를 펼치기도 했다.
작곡가들이 처했던 정치∙사회적 배경(그리고 이들 대부분에게 강하게든 약하게든 창작의 동기로 작용했던 종교적 배경)이 그들의 음악작품에 실제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하는 점, 다시 말해 가사가 있는 인성음악에서 정치∙사회∙종교 관련 텍스트를 사용하는 것 외에, 음악어법을 형성하는데 있어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점에 관심을 갖고 이번 연주회 시리즈를 감상하는 것도 한 가지 접근방법이 될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의 축은 보다 음악내적인 것으로, 이들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이질적인 요소들의 결합, 슈니트케의 용어로 ‘Polystylism’이라 할 만한 특징들이다. 이는 시대적으로 서로 다른 재료들, 즉 옛 것과 새 것을 혼합하거나, 장르적 또는 양식적으로 서로 다른 요소들을 한 작품 안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음악사의 흐름을 볼 때 이렇듯 출처가 다른 재료들을 자신의 작품 안에서 하나로 엮는 시도는 이미 중세 말부터 현대까지 계속해서 있어 왔던 것으로, 이 글에서 주목하고 있는 특정 작곡가들만의 특징이라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단지 다른 작곡가의 작품이나 자신의 다른 작품에서 차용한 재료들을 함께 결합하는 정도가 아니라, 전혀 다른 시대나 전혀 다른 장르, 다른 양식의 특징들을 매우 의도적으로 한 작품 안에 넣고, 이러한 기법을 자신의 주요 작곡스타일에 포함시키는 것은 그리 많은 작곡가들의 작법은 아니다. 물론 이러한 기법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을 때 ‘융합’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반면 단순히 한데 섞어놓은 결과에 그치게 된다면 ‘혼합’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점은 짚고 가려 한다.
폴리스타일, 인용, 콜라주 … 이러한 기법들은 작품의 양식적 순수성 또는 통일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여러 이질적인 요소들을 합하는 것이다. 현재 통용되는, 중세에서 19세기까지 음악사의 각 시대개념과 구분은 단순히 연대만을 기준으로 나뉜 것이 아니고, 그 시기에 만들어진 실제 작품들을 관통하는 몇 가지의 공유된 속성들이 있기에 세워진 개념과 구분이다. 과거 서양음악사의 어떤 한 시기가 가졌던 양식적 공통성, 그리고 한 작품 내에서 대부분 유지되었던 양식적 통일성을 이번 시리즈에서 소개될 러시아 및 동구권 작곡가들은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다. 이들이 그러한 다원적 양식을 즐겨 쓰는 이유에 대해 피상적으로 추측할 수는 없겠으나, 앞서 언급했듯 러시아와 동유럽국가들이 20세기를 보내며 겪었던 서유럽음악의 유입과 단절, 서방으로의 이주, 공산체제의 몰락, 종교적 지향성, 아방가르드 음악에 대한 회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그러한 양식을 이룬 것이 아닌가 짐작해본다. 물론 작곡가 개인에 따라 조금씩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는 점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폴리스타일 외에도 이들 러시아와 동구권 작곡가들에게선 여러 가지 공통점들이 눈에 띈다. 그 중 하나는 이들의 작품이 전반적으로 갖는 감정적 깊이이다. 물론 어떤 음악에도 감정적, 정서적인 측면이 완전히 배제될 수는 없겠으나, 동시대의 서유럽 작곡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감정적, 주정(主情)적인 면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음악을 직접 들었을 때 느껴질 뿐 아니라, 작곡가 자신들의 글 또는 이들의 작품을 즐겨 연주하는 유명 연주가들의 인터뷰에서도 확인된다. 이들의 작품은 정치•종교적 컨텍스트와 결합하여 청중에게 강한 호소력을 갖는다. 매우 모호한 표현이지만, ‘호소력 있는’ 현대음악으로서 전문가그룹 외의 보다 많은 청중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은 현대음악이 옛 음악에게 부러워하는 주요 포인트가 아닐까.
조금 다른 측면이지만, 20세기 초 이후 펼쳐진 현대음악의 스펙트럼 위에서 볼 때 이들은 상당히 보수적인 경향을 띤다. 이들 중 젊은 시절 포스트음렬(post-serialism) 시대의 한 기수로 등장해 1950년대 말~60년대 초의 가장 진보적, 실험적인 어휘를 구사했던 펜데레츠키 또한, 1970년대 중반을 전후로 전통적, 관습적인 양식으로의 드라마틱한 전환을 보여주었다.
이 작곡가들이 안네소피 무터, 로스트로포비치, 기돈 크레머 등 현대음악 전문연주자나 단체가 아닌 포괄적인 클래식 대표 연주자들의 사랑을 공통적으로 받고 있다는 점도 위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현대음악을 전문으로 하지 않는 경우, 연주자들이 현대작품에서 인식하고 감각하는 방식은 옛 클래식 작품을 대할 때의 방식과 근본적으로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즉, 그들이 느끼고 파악하는 ‘음악의 미(美)’는 수세기에 걸쳐 서양클래식 전통이 확립해놓은 작품구조와 전개방식, 소리재료를 다루는 방식 등을 대개 기초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현대음악작품 가운데 러시아나 동구권 작곡가들의 경우 비교적 보수적인 어법을 통해 클래식전통에 익숙한 연주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밖에도 이들은 몇 가지의 흥미로운 공통점을 보인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음악을 인용하거나 대위기법의 모델로서 아이디어를 차용한다는 점, (1930년대 출생 작곡가들 대부분) 쇼스타코비치의 영향을 짙게 받았다는 점, 발레음악과 영화•연극음악을 생계를 위해서 또는 정권의 압박에 의해 상당수 작곡했다는 점 등이다. 이러한 측면에 연관해 각 작곡가의 작품들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는 접근이 될 것이다.
앞서 제시한 두 가지 축—작곡가들이 처했던 특수한 사회•정치적 상황과 그들의 작품 간의 관계에 주목하는 것, 그리고 이들 대부분의 공통점인 다원적 양식을 살펴보는 것—은 쇼스타코비치를 비롯해 이번 시즌에 소개될 여섯 명의 동구권 작곡가를 이해할 수 있는 좌표를 만들어 줄 뿐 아니라, 이들과 함께 연주회를 꾸며줄 한국과 미국의 작곡가들을 바라보는데도 유익한 하나의 관점을 제시해주리라 본다. 또 한편으론, 이 동구권의 작곡가들이 보여준 일면 시대를 거스르는 듯, 일면 시대에 순응하는 듯한 음악양식들이 21세기를 열어가는 이른바 포스트 아방가르드(post-avant garde) 시대의 작곡가들이 시도해볼 수 있는 하나의 길이 아닐지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